2026년 6월 11일, 영화 비평 매체 RogerEbert.com이 연례 기획 “The 20 Best Films of 2026 So Far"를 발행했다. 소속 평론가 17명에게 각자 올해 좋았던 영화를 추천받아 100편 넘게 언급된 작품 중 2회 이상 거론된 정확히 20편을 가나다순으로 소개하는, 순위 없는 중간 결산 기사다. 그런데 이 기사의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리스트 안이 아니라 도입부에 있다. 편집부는 “영화가 돌아왔다"는 2026년 상반기의 체감을 언급하면서, 그 근거로 든 두 편의 초저예산 인디 호러 영화 — 커리 바커(Curry Barker)의 “Obsession"과 케인 파슨스(Kane Parsons)의 “Backrooms” — 를 정작 20편 리스트에는 넣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영화"와 “가장 볼 만한 영화"를 가르다
기사 원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Movies are back! At least that’s what people who love film have been saying in the first half of 2026, largely due to the wild success of Curry Barker’s ‘Obsession’ and Kane Parsons’ ‘Backrooms.’ If we were doing a list of the most essential films of 2026 when it comes to understanding how audiences and the industry are shifting, those two horror indies would be near the top of the list. But we’re not.”
편집부는 스스로 두 갈래의 리스트를 상정한다. 하나는 “관객과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영화” 리스트, 다른 하나는 “당신이 꼭 봐야 할 20편” 리스트다. “Obsession"과 “Backrooms"는 전자의 최상단을 차지하지만 후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흥행 임팩트와 비평적 완성도가 반드시 같은 작품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걸, 매체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 분리가 과장이 아니라는 건 실제 수치로 확인된다.
| 영화 | 감독/배급 | 예산 | 흥행(2026-07 기준) | 비고 |
|---|---|---|---|---|
| Obsession | Curry Barker / Focus Features | 75만 달러(토론토영화제 1,400만 달러 인수) | 전세계 4억 300만 달러(북미 2억 4,530만 달러) | 2주차에 오히려 전주 대비 30% 상승한 2,240만 달러 — 와이드 릴리즈 호러로는 이례적. 역대 호러 흥행 10위권 |
| Backrooms | Kane Parsons / A24 | 1,000만 달러 | 전세계 3억 3,000만 달러(오프닝 주 북미 8,100만/전세계 1억 1,800만 달러) | A24 역대 최고 오프닝(종전 기록 “Civil War” 2,550만 달러의 3배 이상), A24 역대 최고 흥행작 등극. 관객 85%가 35세 이하 |
20세 유튜버 출신인 파슨스가 촬영 20일·예산 75만 달러짜리 영화(바커의 “Obsession”)와 나란히, 젊은 관객층이 “극장에는 안 간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흥행 곡선을 그린 셈이다. 두 영화 모두 대형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나 속편이 아니라, 인디 제작사가 승부를 건 오리지널 호러라는 공통점도 있다.
20편 전체 리스트: 순위 없이, 평론가별 자유 추천으로
리스트에 오른 20편은 장르도, 규모도, 톤도 제각각이다.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의 저예산 하이스트물부터 샘 레이미(Sam Raimi)가 2009년 “Drag Me to Hell” 이후 처음 만든 비-IP 오리지널,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의 실화 인질극,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 주연의 SF까지 아우른다. 편집부는 “100편 넘게 거론됐고, 이 20편은 그중 2회 이상 언급된 작품일 뿐"이라며 스스로 “완전히 과학적이진 않다(not entirely scientific)“고 밝힌다.
| 영화 | 감독/주연 | 평가 요지 | 필자 |
|---|---|---|---|
| 28 Years Later: The Bone Temple | 니아 다코스타 / 랄프 파인스, 잭 오코넬 | 대니 보일 원작의 아서왕 신화 변주를, 종말 앞 인간이 매달리는 신화·서사 쪽으로 톤 전환 | Clint Worthington |
| All That’s Left of You | 셰리엔 다비스 | 1948년 나크바부터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한 가족의 세대 서사시 | Marya E. Gates |
| Billy Preston: That’s the Way God Planned It | 패리스 바클리(다큐) | 비틀스와 함께한 오르가니스트 빌리 프레스턴의 재능과 숨겨야 했던 게이 정체성의 명암 | Glenn Kenny |
| Blue Heron | 소피 롬바리 | 로카르노 영화제 프리미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다루는 성장물 장편 데뷔작 | Robert Daniels |
| By Design | 어맨다 크레이머 / 줄리엣 루이스 | 중년 여성이 의자와 의식을 바꾸는 초현실 바디스왑극 | Clint Worthington |
| The Christophers | 스티븐 소더버그 / 미카엘라 코엘, 이안 매켈런 | 저예산 하이스트물. “성인 겨냥 중간예산 영화의 존속 가능성” 증명 | Peter Sobczynski |
| Crime 101 | 바트 레이튼 /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할리 베리 | LA 배경 고전 느와르 계보의 앙상블 스릴러 | Tomris Laffly |
| Dead Man’s Wire | 구스 반 산트 / 빌 스카스가드, 알 파치노 | 1970년대 실화 인질극. 시드니 루멧 화법을 잇는 톤 | Matt Zoller Seitz |
| The Drama | 크리스토퍼 보글리 / 로버트 패틴슨, 젠데이아 |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해 심리 스릴러로 전환 | Richard Roeper |
| Erupcja | 피트 오스 / Charli xcx | 2024년 여름 바르샤바에서 비밀리에 촬영된 즉흥 협업 멜로드라마 | Isaac Feldberg |
| Hokum | 데미안 매카시 / 아담 스콧 | M.R. 제임스풍 아일랜드 유령 이야기 | Simon Abrams |
| I Love Boosters | 부츠 라일리 | 밝은 색감의 반자본주의 코미디 모험극 | Cortlyn Kelly |
| Is God Is | 알레샤 해리스 / 카라 영, 말로리 존슨, 스털링 K. 브라운 | 본인 희곡을 각색한 복수극. 신화적 웅장함과 자매애를 결합 | Zachary Lee |
| Magellan | 라브 디아즈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 필리핀 거장 라브 디아즈가 만든 이례적인 상업적 전기 영화 | Scout Tafoya |
| Nirvanna the Band the Show the Movie | 맷 존슨, 제이 매캐럴 | 2007~2009년 웹시리즈 푸티지를 현재와 엮은 게릴라 코미디 | Brian Tallerico |
| Pillion | 해리 라이턴 /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해리 멜링 | BDSM 관계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탐구 | Katie Rife |
| Project Hail Mary | 라이언 고슬링 | “영화에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춘 SF. 순수한 기쁨(genuine joy)을 극찬 | Nell Minow |
| Send Help | 샘 레이미 / 레이철 맥아담스, 딜런 오브라이언 | 레이미의 2009년 이후 첫 비-IP 오리지널. 바다 위 생존 스릴러 | Brian Tallerico |
| The Sheep Detectives | 카일 발다 / 휴 잭맨(목소리) | “Babe”·“Charlotte’s Web” 계보의 “반스야드 시네마” | Richard Roeper |
| Yes! | 나다브 라피드 / 아리엘 브론즈 | 이스라엘 사회의 정상화 기제와 팔레스타인 학살 방관을 정면으로 고발 | Carlos Aguilar |
이 포맷이 말해주는 것
RogerEbert.com의 이 기사가 흥미로운 건 개별 영화 리뷰로서가 아니라, “연례 중간 결산"이라는 저널리즘 포맷 자체 때문이다. 세 가지 선택이 눈에 띈다.
첫째,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20편 중 1위"가 아니라 “2회 이상 언급된 20편"이라는 문턱만 두고 알파벳순으로 나열한다. 평론가마다 취향과 기준이 다르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 방식이다.
둘째, 필자를 개별화한다. 편집부 명의로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영화마다 담당 평론가 1인의 이름과 문체를 그대로 살린다. 리처드 로퍼(Richard Roeper)는 “The Drama"를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에 비유하고, 넬 미노우(Nell Minow)는 “Project Hail Mary"를 “genuine joy"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 톤의 통일보다 개별 평론가의 육성을 남기는 쪽을 택한 셈이다.
셋째, 가장 중요하게는 “중요한 영화"와 “볼 만한 영화"를 의도적으로 분리한다. “Obsession"과 “Backrooms"가 증명한 4억+3억 달러급 흥행은 산업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이지, 그 자체로 비평적 완성도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반대로 이번 20편에 오른 작품 다수 — 라브 디아즈의 6시간짜리 필모그래피에서 나온 이례적 상업 전기물 “Magellan”, 나크바부터 현재까지를 그린 “All That’s Left of You” — 는 박스오피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못했지만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정리
| 항목 | 내용 |
|---|---|
| 발행 | RogerEbert.com, 2026-06-11, The Editors(편집부), 17인 평론가 공동 집필 |
| 형식 | 순위 없음, 2회 이상 언급된 20편을 가나다순 소개, 매년 반복되는 연례 기획 |
| 흥행 대비군 | “Obsession”(4억 300만 달러) + “Backrooms”(3억 3,000만 달러) — 20편 리스트에는 미포함 |
| 핵심 메시지 | 산업적 신호(흥행)와 비평적 완성도(볼 만함)는 다른 축이라는 것을 편집 구조로 증명 |
순위 없는 결산이라는 포맷은 언뜻 안이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해를 정리할 것인가"라는 편집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RogerEbert.com은 그 답을 “산업이 말해주는 것"과 “평론가 개인이 사랑한 것"을 나란히 두되 섞지 않는 방식으로 냈다.
참고 자료
- The 20 Best Films of 2026 So Far — RogerEbert.com (2026-06-11, The Editors)
- Box Office: ‘Obsession’ Surpasses $400 Million Globally — Variety
- How an indie horror film became a box-office ‘Obsession’ — NBC News
- ‘Obsession’ Passes $400 Million Worldwide, Becomes Highest Grossing Film With Budget Below $1 Million — TheWrap
- ‘Backrooms’ Box Office: Kane Parsons’ Horror Success Explained — Variety
- How ‘Backrooms’ Blew Doors Off Box Office With $118M WW Opening — Deadline
- ‘Backrooms’ Streaming Date Nears As Film Hits $330 Million At Box Office — Forbes
- ‘Backrooms’ Is A24’s Highest Grossing Movie, Overtaking Marty Supreme — Var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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